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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대한 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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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접하게 연관된 강수농작물의 생산량.

농업 사회였던 조선시대,

​자세히 기록할 수 밖에 없었던 호우 사례.

 

강수량에 따라 나뉘는 비에 대한 기록.

미우(微雨)

1397년 12월 12일

비가 조금 내렸다.

소우(小雨)

1397년 12월 07일

이슬비가 내렸다.

임우(霖雨)

1422년 07월 16일

이 해 여름에 장마 비가 오래 계속되어, 보리 이삭이 모두 썩고, 오곡의 종자가 많이 싹이 나지 않았다.

1421년 03월 18일

비가 그치지 않아 냇물이 넘치고 길이 질퍽거려서, 두 임금이 함께 풍양 이궁으로 돌아왔다. 양주 동쪽에 내가 있는데 창일하여 거의 건너지 못할 정도였다.

취우(驟雨)

1428년 11월 18일

소나기가 오고, 천둥과 번개가 쳤다.

대우(大雨)

1394년 06월 10일

큰비가 내렸다.

폭우(暴雨)

1396년 08월 11일

폭풍우로 인하여 강원도의 춘주(春州)·금성(金城)·홍천(洪川)등 아홉 주현(州縣)에 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치어, 인가(人家)가 표몰(漂沒)된 것이 1백 50여 가(家)나 되었으며, 물에 빠져 죽은 것이 인구(人口)가 1백 8명, 소가 10두(頭), 말이 9필이었다.

1434년 07월 20일

평안도 성천(成川)에 폭우(暴雨)가 내려 산이 무너지니, 남녀 합해서 네 명이 압사했다.

홍수

1412년 07월 06일

큰 비가 내려 한강(漢江) 물이 넘쳐서 양주(楊州)의 선군(船軍) 한 명이 용산강(龍山江)에 빠져 죽었다.

1413년 05월 13일

경상도에 홍수가 나서 초계(草溪)·창원(昌源)·창녕(昌寧)·함안(咸安)·칠원(漆原) 등지의 보리밭이 물에 잠겼는데 거의 4백 결(結)이나 되었다.

*홍수: 대우(大雨)와 폭우(暴雨) 시 발생 가능하며, 대수(大水), 물난리 등의 어휘로도 표현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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